야생을 떠난 비둘기나 오리가 가축이 되는데까지 얼마나 걸릴까?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 그들은 행복을 찾았다고 할 수 있을까?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 그저 먹을 것과 쉴 곳이 제공되고 새끼까지 기를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아가는건 아닐까?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한 선택을 지속했다. 야전을 떠나 교육기관으로 향할 때는 새로운 곳을 향한 경유지로 생각했다. 생각했다. 야전(현장)의 야생성을 잊어버린 장교들은 정말 많다. 소위 말하는 똥별들의 이미지는 대머리에 배나온 아저씨다. 현장의 느낌을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서 유지하고 있으며 보고로 들어오는 내용을 듣고 경험에 비추어 유지한다. 야생성은 현장과 떨어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라져간다. 매일 아니라고 말하면서 구호를 외쳐봐야 그냥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메아리가 울려퍼지면서 배는 나오고 총은 녹슨다. 전역을 앞둔 군인들은 특히 더 그런가. 육군 아닌 타군들이어서 그런가. 배 나온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스스로를 더 힘든 곳에 던졌기에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다. 역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해야한다.